관계

- 인류세

산업경영공학과
이*주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무서운 책’이라 답할 것이다. 화가 났다. 당장 눈앞의 장래와 취업에 대한 답도 찾지 못한 나에게, 인류세라는 거대한 문제를 던져놓고, 그에 대한 답도 주지 않는 이 책이 나는 원망스러웠다. 외면하려 해도 끊임없이 과학과 철학, 역사를 앞세워 묵직하게 들어왔다. 내가 지금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자각했다 한들,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된 인류세를 뭐 어쩔 도리가 있나? 그저 인간이란 존재의 하찮음과 무력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걱정거리를 하나 더 얻었지. 솔직히 속으로 욕을 욕을 하던 중에 문득 스쳐 갔다. ‘이게 모른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아, 내가 당장 눈앞의 것들에 눈이 멀어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고 있나?’ 그럼, 다시, 하찮고 무력한 내가 인류세가 닥친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나는 공학을 전공한다. 공학이 추구하는 것과 이 책의 저자가 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나는 4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이 위대한 산업혁명이 인간과 인간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수도 없이 배웠지만, 이 혁명이 자연에 미친 영향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들은 적이 없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지구 위에 있다. 지구와 상하 관계라는 뜻이 아닌, 실제로 지구라는 행성 표면 위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 당연하게 사람들은 잊고 살아간다.
인류와 자연의 공존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다시 생각하여야 하냐는 질문에 나의 답은 이것이다. “관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인간 사이에 맺는 인간관계처럼 지구와 맺어진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간단한 이치이다. 지구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고, 반대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명목하에 지구를 훼손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다. 인간이 지구를 통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버려야 한다. (실제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므로) 서로를 통제할 수 없고, 빌린 것은 깨끗이 돌려주며, 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인간관계에서의 매우 기본적인 사항들은, 지구와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현재 인류가 타고 있는 인류세로 가는 차에 브레이크는 없다. 오직 속도만을 조절하는 엑셀에 발을 올리고 있는 지금, 무엇을 절실하게 시도해야 하냐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솔직한 나의 답은 ‘무엇이든’이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절실하게. 인류세를 알리기 위해 그 어떤 방식으로라도, 학교의 필수강의든, 산업혁명의 영향을 광고하든 무엇이든 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환경규제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것도, 세계회의에서 환경단체가 가장 큰 권력을 쥐는 것도 전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령 지금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20-30년 후에는 다른 역사로 쓰일 것이다. 설득과 회유가 되지 않는다면, 강압과 공포심을 이용해서라도 현시기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쥬라기 월드’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인류세를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났다. 과학의 발전으로 공룡과의 공존을 초래하여 인류의 안전이 위협받는 그 영화에서 말콤박사가 한 말은 지내다가 문득 생각 날 정도로 인상 깊었다. 특히 마지막 대사를 가장 좋아하는데, 우연인지 이 책에도 같은 문구가 나왔다. 영화의 그것과 의미는 다소 다르겠지만, 어떤 의미이든 나는 이 글의 끝에 꼭 이 문구가 쓰였으면 좋겠으므로, 말콤박사의 대사와 이 문구로 글을 끝내고 싶다.
‘세기에 걸쳐 우리는 엄청난 기술력을 축적했지만,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왔죠. 얼마나 많은 증거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자멸을 초래한 겁니다. 금지된 선을 넘은 거라구요. (...) 새로운 시대가 온 겁니다. 쥬라기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감문]

유년 시절에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나름 좋아했었는데, 커가면서 점점 담을 쌓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에세이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선뜻 접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졸업과제 준비 기간과 겹쳐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실망스러운 제 글과 마주할까 봐 그게 더 망설여졌습니다.
걱정했던 실망감이 글을 써 내려가는 내내 들었지만, 동시에 늘 접하던 A4용지에 문제 풀이가 아닌 원고지에 에세이가 낯설기도, 솔직한 내 생각을 쏟아내는 것이 재밌기도 했습니다. 수상은 기대하지도 않았기에,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부끄럽지만, 부족함을 알았으니 이제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과는 장려상이지만 저는 분명 그 이상으로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대회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