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발자취, 그리고 우리 사회

-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정치외교학과
이*원

 

고등학교 때, 한국 지리 시간에 ‘거제도=조선소’라는 공식을 외우면서 처음으로 거제도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해 두 명의 거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들은 책에서 말한 ‘거제를 떠난 딸들’이었다. 친구들과 나는 빠르게 친해졌고, 인스타그램보다 더 사적이고 깊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블로그에서도 서로이웃을 맺었다. 우연히 블로그를 보던 중 한 친구의 블로그 글을 읽었다. 그의 고향인 거제와 가족, 그리고 그 친구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거제의 3대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를 둔 친구는 중학교 때까지 원하는 것이라면 모두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향후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유학을 하는 상상도 했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일을 쉬는 텀이 길어졌고, 그에 따라 이전에 꾸었던 꿈들도 원래는 꾸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은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마치 그의 삶에 빛이 반짝였다가 순식간에 없어진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은 단순히 회상하는 투의 일상을 기록하는 글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무언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았다.
책을 읽은 뒤, 친구의 삶과 조선소, 그리고 거제라는 도시 전체의 맥락이 동일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아버지는 매일 조선소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저녁엔 돌아와 가족들과의 행복한 저녁을 누리며 두둑한 보너스가 찍힌 통장을 보며 행복을 맛보았을 것이다. 일이 끝난 후에도 ‘자랑스러운’ 작업복은 벗지 않은 채로 회사의 ‘또 다른 가족’들과 거리를 누볐을 것이고, 넉넉한 가정형편은 자녀들에게도 큰 꿈을 꾸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했던 근대 산업으로 고속으로 성장하는 빛을 본 만큼, 빛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우는 운명을 거제와 조선소는 피할 수 없었다.
친구의 블로그 글에서처럼 어렸을 적 철없이 꿀 수 있었던 큰 꿈은 사그라들어야 했고, 산업 특화 도시라는 특성은 그와 다른 도시들과는 철저히 분리되어 고립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업의 남성 중심적 일자리는 거제도민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을 초래했고, 나아가 가족의 형태 역시 남성이 홀로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가정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남성부양자모델’이 고착화 되었다. 그리고 거제도의 딸들은 본가가 거제임에도 일자리의 남성중심성때문에 고향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없어 떠나야만 했다. 게다가 정부의 주도로 성장한 거제는 외부인들의 비판 거리가 되었다. 이처럼 중공업 가족들은 산업이 흥하던 시간에 ‘유토피아’라 불렸던 것에서, 그 명성에 금이 가려 하는 현재까지 대비되는 모습을 갖는다. 거제의 어제가 유토피아였다면 오늘은 디스토피아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거제가 조선산업으로 반짝였다가 지금 그 불씨가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성장에 목이 마르고 가난에 몸부림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진국들에 비해 산업의 성장과 그것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빨리빨리’ 문화가 바로 한강의 기적을, 나아가 산업 도시 거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빠르게 성장했던 덕택에 자랑거리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이후의 삐걱거림에 대해 부족한 내공으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겨난 게 ‘남성부양자모델의 고착화’이고, 하청에 대한 대우의 문제이며, 줄어든 선박 수요와 해양플랜트 건조에 대한 대응 미숙 문제이다.
책의 저자는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여성의 고용률을 올리는 등의 방법들이 그것이다. 물론 거제를 다시 부흥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거제의, 그리고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자취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도시에 빛을 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빛에 가려지는 주변부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이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봤을 때, 눈앞의 경제성장을 쫓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산업이나 정책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한 숙고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전까지 우리 사회가 산업 자체만이 아닌 사람들의 터전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유의미한 것들을 찾아내느냐에 따라 이후의 사회 모습이 달라질 수 있듯이, 이 책을 통해 국가 주도의 ‘빨리빨리’ 성장과 거제의 빛과 그림자를 되새겨 우리 사회에 조금이나마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소감문]

독서 에세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 책을 빌려 읽으면서, 대회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다. 백일장 형식의 대회는 나가 본 적이 없어서 떨리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을 받아 너무나 기뻤다.
기쁜 마음으로 시상식에 갔고, 수여식을 진행하면서 들었던 말들도 기억에 남았다.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해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들은 다 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글이 아닌, 과제를 한다거나 하는 등 분명한 목적이 있는 글이었고, ‘써야만 해서’ 쓴 글들이었다. 하지만 독서에세이 대회를 마무리하고 난 뒤 이전에 썼던 글들과는 색다른 느낌의 글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 생소했지만, 내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글도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시상식을 다녀온 뒤 더욱 확고해졌다. 앞으로는 서툴러도 목적이 없는, 따뜻한 글도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나를 성장시킬 밑거름이 될 것이다.
끝으로, 독서 에세이 대회는 나에게 단순히 글을 쓰고 상금을 받는 대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좋은 추억이 되었다. 나아가 누군가에겐 엄청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회를 개최해주신 분들께, 시상식에서 아낌없이 칭찬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