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숲은 여전하다

- 비숲

한국어문학과
안*진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쉽게 놀란다. 심지어 집 앞을 청소하는 소리에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늘리곤 한다. 나는 어디에서 위협감을 느꼈을까. <비숲>의 긴팔원숭이들도 처음에는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기 바빴다. 나무 위의 생명체를 뒤쫓아 가기엔 도시인의 체력으로는 역부족이다. 도망가고, 쫓아가기를 여러 번, 긴팔원숭이들은 차츰 이들이 위험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가 야생의 긴팔원숭이보다 예민하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문명사회를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비숲’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숲의 긴팔원숭이들은 이방인까지 포용할 수 있는 공존성을 가졌다. 비가 내리는 하늘과 만물을 키워내는 땅의 비숲은 생명과 죽음조차 공존하고 있다. 그들의 아침은 생명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죽음의 기운이 가라앉는 곳이다. 내가 ‘비숲’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현재의 문명사회는 공존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비가 오면 당장이라도 하수구로 빠져나가야 하고, 잎이 떨어지면 빗자루로 쓸어버린다. 교과서에서 도덕과 자연을 글로 배운다지만, 현실에서는 도덕과 자연이 머물고 있는 장소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니 가질 수 없을 뿐이다. 이에 도시는 작은 숲을 조성하기로 한다. 나무를 모아 심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든다. 막상 숲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숲에 살 수 없다.
<비숲>의 생물들은 망각으로 숲을 만든다. 다람쥐가 숨겨 둔 도토리는 생명의 힘이 깃든 곳에서 나무가 된다. 나무는 다람쥐로 인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고 단단한 씨앗에서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린 것은 나무다. 이 때문에 나무는 다람쥐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다람쥐는 나무에게 왜 씨앗이 아닌 나무가 되었냐고 묻지 않는다. 그들의 약간의 망각이 서로의 숲을 더 푸르게 만들 뿐이다. 우리의 작은 숲을 보자. 우리의 망각은 숲의 것을 가져오면 안 되는 것에만 이루어졌다. 혹은 숲을 가꾸는 방법을 잊은 것일지도 모른다. 숲의 것이 아닌 쓰레기를 두고 오는가 하면, 숲의 것인 열매를 무자비하게 담아오기도 한다. 우리에게 생명의 주도권을 뺏긴 숲은 단순히 힐링을 위한 곳으로 전락해 버린다. 숲이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니다. 작은 바람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동식물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 뜨거운 생명의 기운과 단호한 죽음의 경계가 만나는 곳이다. 오늘날의 문명은 우리에게서 숲을 빼앗았다. 그러니 누군가의 호의에도 의심을 품고, 누군가의 불행에도 인정사정없는 냉담한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에 수많은 탐험가들은 생태 연구를 멈출 수 없다. 우리와 사는 곳이 달라도 한참 다른 곳에서, 우리의 외모와 달라도 한참 다른 생명체들의 모습을 찾음으로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어떻게 삶을 사고 있는가의 질문들이 그 답이다. 그들의 삶이 오로지 ‘비숲’ 덕분에 풍요로운 것이라면 그들의 배경을 닮게 만들어야겠지만, 그전에 그곳에서 오랜 삶을 살아 온 것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라, 여전히 숲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더 나은 삶을 원하기에, 자연의 넘치는 생동감을 바라기에 꾸준히 연구해야만 한다. 이미 잊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비숲에서 나고 자라왔다.


[소감문]

긴장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 책은 두어 번 정도 읽었는데, 내가 과연 이 책의 묘미를 다 표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독서 에세이 대회’에 처음 나가보았는데, 경험자의 이야기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하였다. 막상 <비숲>의 주제를 받아보니, 시간은 남았지만 쓸 종이가 부족했다. 무슨 내용이 더 있겠냐마는, 우리에게 숲이 필요하고 나는 비숲이 부러웠다는 글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대상이라는 결과에 믿을 수 없어 다시 물어본 문자가 부끄러웠다. 나의 작은 숲에 비가 쏟아지는 듯했다.
좋은 글을 썼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이 대회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걸’라는 짧은 후회가 든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으로서, 그럼에도 학교에 남은 마지막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 명의 경험자가 되어 말하자면, 동아대 학우들이 생명의 비를 맞을 수 있는 기회에 도전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