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욕심, 곧 나의 욕심

- 20 VS 80의 사회

관광경영학과
정*주

 

책은 사회 구성원을 20과 80으로 구분한다. 20은 중상위층. 80은 그렇게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는 세상을 1과 99로 나누는 것에 익숙하다. 경제적 상위 1%가 경제 규모의 70%,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1%가 사회를 쥐락펴락한다고 말하면 그 1%만 미워하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보는 경제는 정말 불평등해 보이고, 내가 1%에는 절대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세상을 욕하기에 참 용이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부터 20 vs 80의 사회이다. 세상의 20%라니, 5명 중 1명이다. 극단적으로 나눈 것 같지도 않아 무언가 심심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심심함이 끌렸다.
저자가 20과 80으로 사회를 나눈 이유는 사회 불평등을 논할 때 더 현실적인 안목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세상에 실질적인 기득권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20%인데, 그들은 간과하고 가장 극단적인 1%만 닦달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1이 아닌, 20이 지배하는 사회를 논한다.
저자는 지금 당장의 사람들의 계층 이동에 대한 얘기보다, 계층 되울림 현상에 집중한다. 이 말은 곧, 왜 시대가 흐를수록 사회 불평등 현상이 심해지냐는 뜻이다. 저자는 그 원인 2가지를 설명한다. 첫 번째로, 후손들의 능력 성장 배경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중상위층 자녀들은 더 비싼 값으로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기회 사재기라는 것을 언급한다. 사회의 좋은 자리를 중상위층 사람들이 연고로, 또는 그들만의 유대로 선점해 중상위층이 아닌 학생들이 좋은 자리를 누릴 기회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돈이 돈을 만든다는 것이 요점이다.
요즈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개천에서 나봐야 뱀이라는 둥. 나는 그런 비아냥을 나름 무시하며 살려고 했지만, 최근 들어 그 소신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가정 중 75%가 중산층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부터이다.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는 뉴스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자주 들어왔다. 그리고 고3을 지내면서 느낀 것이 있다. 나는 교육비 걱정은 없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내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집이었다. 어릴 때 영어학원에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고, 고3이 되어서는 인터넷 강의 프리패스의 수십만 원대의 가격이 부담스러워 자신이 제일 약한 과목만 수강했었다. 그 친구는 대학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곳보다 학비가 싸고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곳으로 진학했다. 아무리 세상의 경제 수준이 올라갔다지만 기회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책에서 공정한 사회를 위해선 자신이 계층 사다리의 어느 부분에 놓일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만들 수 있다고 언급하는데, 어느 기득권이 자신이 불확실성 참여하는 것을 찬성하겠는가. 그래서 책은 현실적인 방안으로 대학 교육권 확대, 학비 지원 등을 제시하지만 세상을 해결하기엔 미비하다. 결국, 불평등은 완화하기 힘듦을 암시하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소감문]

우선 대학에서도 각자의 글솜씨를 가지고 무언가 해볼 수 있다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글을 조리 있게 쓰는 편도 아니고, 재치 있게 쓰는 편도 아닙니다. 하지만 책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좋아해서 참여해봤습니다.
생각도 못 한 좋은 결과가 나와서 뿌듯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합니다. 제가 상을 받아도 되는지, 나 때문에 다른 분이 더 좋은 글을 쓰셨음에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그래도 운 좋게 상을 탄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행사가 열리면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