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동서양이 만나고 헤어지는 경계에 있는 나라이다. 그 경계는 갈등과 융합, 극복과 생성이라는 원융회통의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 야샤르 케말(Ya?ar Kemal)은 쿠르드족 어머니와 투르크멘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그는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아버렸고 그 충격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고 갖가지 육체노동에 종사하였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단행한 탄지마트(개혁) 칙령(1839)과 더불어 서구적 근대화가 추진되었고, 터키 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세속화와 서구화는 더욱 본격화되었다. 야샤르 케말은 그런 근대화의 흐름을 타고 적극적으로 번역되었던 유럽의 작품들을 탐독하며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터키 중남부 출신인 케말은 자기가 나고 자란 추쿠로바의 평원을 문학적 상상력의 모태로 삼았다. 스무 살 무렵에 이미 여러 지방의 민속을 조사하고 채록하여 만가(輓歌)집을 출간하는 한편, 그 한참 뒤에도 르포르타주 작업을 위해 민속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런 경험들이 그의 문학적 토양이 되었다.
더불어 그는 유럽의 문학과 예술에서 섭취한 교양의 토양 위에서 서구적 근대화의 격류 떠밀리고 내쳐진 터키 민중의 현실을 자기 글쓰기의 주요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그 근대화로 인한 세속화가 가져온 영성의 타락과 원초적인 공동체의 분열을 날카롭게 간파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민중과 민속은 단지 글쓰기의 소재를 제공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기 안에 깃들어 있는 서구적 근대성의 심연을 해체하는 상상력의 근거지이자 정신적 격전의 거점기지였다. 아나톨리아반도의 일개 소수민족 출신으로 터키를 넘어 세계적인 인물로 우뚝 선 야샤르 케말, 탄압을 겁내지 않았던 이 행동하는 작가는 이처럼 심오하고 범상치 않은 인연들 속에서 태어났다.
??의적 메메드??는 ??말라깽이 메메드(?nce Memed)??(1955)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원제목의 ‘말라깽이’이라는 것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주인공 메메드를 부르는 호칭 속에 제대로 발육되지 못하고 수난당하며 살았던 온몸의 결핍과 상흔을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의 삶이 추구해야하는 것은 바로 그 결핍을 채우고 상흔을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메메드가 바라는 것은 수탈과 학대가 없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메메드는 그런 온건한 바람마저도 비참하게 좌절당하자 그 추구의 방법을 보다 급진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학대와 수탈로부터의 도피라는 수동적인 방법, 자기 개인의 사적인 행복을 위한 탈주라는 소극적 방법으로는 진정한 해방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급진적인 행동으로 나아간다.
전래하는 구비설화의 전통을 훌륭하게 이어받은 ??말라깽이 메메드??는 추적하고 추격하면서 추구하는 이야기를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서사로써 펼쳐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터키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 투르크 민족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전래하는 영웅이야기 ??쾨르오울루(Koro?lu)??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메메드의 개인적 결핍을 민중의 역사적 결핍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요컨대 말라깽이 메메드가 의적이 되어야 했던 것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개인을 역사에 봉헌하게 하는 멸사봉공의 서사를 재현하지 않는다. 메메드가 헌신한 것은 국가나 전체가 아니라 공동체였고 자연이었다. 메메드의 주체성을 단순하게 서구적 근대성이 주조한 개인이라는 관념으로 환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중영웅이야기와 교양소설이라는 두 개의 서사적 축을 결합시킴으로써 동서와 고금의 서사적 유산을 훌륭하게 융합하였다. 원초적인 공동체와 민중주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고래의 민중영웅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전유하여 고전적 교양소설의 선형적 순응화의 틀을 교란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양소설의 형태론적 특질을 도입함으로써 정태적인 민중영웅이야기의 설화적 도식을 깨뜨리고 서사를 역동적으로 굴절시켰다. 민중영웅이야기와 교양소설의 융합은 나르키소스적인 개인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공통체적 인간의 모색을 통해 서구적 근대성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미학적 도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