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Havruta)’,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강의계획서 수업 방법에 종종 이 하브루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브루타는 유대인들의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토론식 교육을 말하는데, 원래 이 하브루타는 탈무드를 이해하기 위한 학습 방법을 말한다. 그렇다면 탈무드는 무엇이냐? 이는 유대인의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토라’에 주석을 달아 해석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경과 같은 토라가 있고, 이 토라를 해석한 것이 탈무드이고 탈무드를 이해하기 위해 학습하는 방법이 하브루타인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하브루타 방식으로 공부를 하지만 정작 탈무드는 깊이 있게 들여다 보지 못한 것 같다.
탈무드 원전은 총 63-64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게가 75kg이나 나갈 만큼 엄청난 분량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탈무드 원전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고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지혜를 전달해 주는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일종의 편집본을 주로 읽는다. 탈무드는 굳이 필자가 소개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어린 시절 이솝우화와 함께 짧은 동화로 한 번쯤은 읽었을 테니 말이다. 이제 어른이 된 독자들에게 탈무드를 다시 추천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읽었던 느낌과 지금 읽는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탈무드를 읽어 보자. 특히 하브루타 방법으로 읽어 보자. 같이 읽을 사람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자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읽어 보자. 그리고 교훈을 찾으려 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읽어 보자. 짧은 이야기를 우리 삶과 사회에 투영해 보고, 성찰하고, 성찰이 통찰에 이를 수 있도록 깊이 생각해 보면서 읽어 보자.
한 노인이 뜰에서 묘목을 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나그네가 이것을 보고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이 나무에 언제쯤 열매가 열릴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한 50년쯤 지나면 열리지 않겠소?”
나그네는 다시 물었다.
“어르신께서 그때까지 살아 계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과수원에는 과일이 언제나 풍성하게 열려 있었소.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내 아버님께서 나를 위해 그 나무들을 심었기 때문이었소.
그래서 나도 지금 내 아버님과 똑같은 일을 하는 중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