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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평등한 눈 나는 연암 박지원을 <열하일기> 전에 <허생전>으로 먼저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박지원의 <허생전>을 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고전 <허생전>을 제대로 번역한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줄거리를 숙지하는 것과 고전을 제대로 읽어낸 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열하일기> 역시 그러했다. 나는 수업시간에 몇 번 다룬 것으로 <열하일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출판사 보리에서 나온 <열하일기>의 첫 장을 펼치고 막막한 마음이 먼저 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고어 때문에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대로 책을 덮으려고 하다가 돌베개에서 <열하일기>를 펴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책을 빌렸다. 군데군데 삽화가 들어있고 각주가 본문의 옆에 자리해 읽기가 훨씬 편했다.
<열하일기>는 단순하게 말하면 청나라 여행기를 담은 일기 형식의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 중에 일어났던 신변잡기 적인 이야기와 연암체라고도 따로 불리는 박지원의 매력적인 필체가 어우러져 단순한 기행문으로만 접근한다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대화를 통한 상황 묘사나 재치 있는 대답은 글을 읽는데 지루함을 덜어주었고 현대 소설과 비견하여도 모자람 없는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고 있었다. <열하일기>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제쳐두고 문체만으로도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열하일기>는 ‘도강록(渡江錄)’부터 시작해 ‘금료소초(金蓼小抄)’까지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인상 싶었던 첫 장인 ‘도강록’의 한 장면만 구체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압록강을 건너는 내용이 담긴 ‘도강록’에서 연암이 자물쇠를 잃어버린 장복을 탓하는 대목이 있다. 연암은 이천리를 가서 황성에 도착할 때엔 오장육부까지 잃어버릴까 겁난다며 우스갯소리를 곁들여 장복을 타박한다. 이에 장복은 황성에서는 구경할 때 눈을 뽑아가지 못하게 눈을 감싸고 있을 것이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이어 중국 동쪽의 가장 끝이라는 책문이 생각보다 장대하고 반듯함에 기가 죽은 연암이 문득 되돌아가고픈 마음을 다잡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옹졸한 마음을 반성하던 연암은 한 맹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저 맹인의 눈이야말로 진정 평등한 눈이 아니겠느냐?”말하며 크게 깨닫는다. 큰 비중 없이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처럼 지나가 버리지만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연암의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좁은 식견으로 세상을 넓게 바라보지 못하는 북벌파를 비판하고 자신 역시 외견의 화려함으로 쉽게 기가 죽어 선입관을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는 장면이라고 본다. 중국의 문화정책과 사상에 통제의 실제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한 ‘심세편(審勢編)’보다 저 한 장면이 <열하일기>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보았다.
연암이 태학관에 머물렀던 일을 기록한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도 인상 깊다. 특히 중국의 학자들과 두 나라의 문화와 제도에 대해 필담형식으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통해 당시 문화에 대해 지식인의 식견이 어떠했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효의 그릇 된 강요와 중국의 전족문화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문화와 제도에 관련한 문답을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게 서술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왜 오늘 날 다시 <열하일기>를 읽어야 할까. 고전을 읽는 가장 궁극적인 물음이지만 선뜻 답을 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스마트폰을 통한 페이스 북, 트위터와 같은 쇼셜네트워크가 활성화 되면서 지구촌이라는 말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사절단을 보내 며칠을 걸려 압록강을 건너고 산해관에서 북경으로 북으로 열하까지 고난하고 긴 여정을 통해서야 다른 나라와 소통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른 오늘날 열하일기는 왜 다시 대두되는 것일까. <열하일기>는 서구중심주의의 오늘날 또 다른 화두를 제시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면 고전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일부분만을 보고 중심을 오독하고 있다. 혹은, 박지원이 처음 중국의 문물을 보고 기가 죽은 것처럼 우리의 것을 고루한 것으로 생각하고 중심으로 소속되고자 애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학파와 북벌파가 나뉘어 탁상공론을 일삼았던 것처럼 오늘날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평등한 눈을 가지고자 하는 이시대의 연암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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